게임 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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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게임 쇼는 1930년대 말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등장한 이래, 퀴즈, 게임, 쇼의 요소를 결합하여 대중에게 즐거움을 선사해 왔다. 1950년대 퀴즈 쇼 스캔들을 겪기도 했지만, 1960년대 이후 다양한 형식으로 발전하며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미국, 영국, 일본, 한국 등 각국에서 독자적인 형태로 발전했으며, 상금, 상품, 보너스 라운드 등 다양한 구성 요소를 통해 시청자들의 참여를 유도한다. 게임 쇼는 사회문화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으며, 조작 논란, 과도한 경쟁, 선정성 등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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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게임 쇼는 1930년대 말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초의 텔레비전 게임 쇼 《Spelling Bee》와 최초의 라디오 게임 쇼 《Information Please》는 모두 1938년에 방영되었다. 방송 매체에서 일본 최초의 퀴즈 쇼는 『말의 샘』(NHK 라디오 제1, 1946년 12월 3일 ~ 1964년 3월 31일)이며, 광의의 게임 프로그램 시조이기도 하다.
일본의 게임 쇼는 버라이어티 형식, 신체적 스턴트, 운동 경기를 차용하여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일본 스타일은 해외에서도 차용되었으며, 《I Survived a Japanese Game Show》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패러디되기도 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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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1. 초창기 (1930년대~1950년대)
1930년대 후반, 라디오와 텔레비전에 게임 쇼가 처음 등장하기 시작했다. 1938년에는 최초의 텔레비전 게임 쇼인 《Spelling Bee》와 최초의 라디오 게임 쇼인 《Information Please》가 방영되었다. 1939년에는 라디오 퀴즈 쇼 《Dr. I.Q.》가 게임 쇼 장르의 첫 번째 주요 성공작으로 기록되었다.[2]1941년, 《Truth or Consequences》는 상업적으로 허가된 텔레비전에서 방송된 최초의 게임 쇼였고, 《CBS Television Quiz》는 정기적으로 편성된 최초의 게임 쇼였다.[3] 1950년대에 텔레비전이 대중화되면서 게임 쇼는 빠르게 정착했다. 주간에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낮은 상금의 게임 쇼가, 프라임 타임에는 더 높은 상금이 걸린 게임 쇼가 방송되었다.[3]
2. 2. 1950년대~1970년대: 발전과 위기, 그리고 부활
1950년대 후반, Twenty-One과 The $64,000 Question과 같은 고액 게임 쇼들이 인기를 얻었지만, 1950년대 퀴즈 쇼 스캔들로 인해 많은 게임 쇼가 조작 논란에 휩싸였다. 1960년대, 스캔들 이후 게임 쇼는 미국 주간 텔레비전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1] 1960년대 초, 저위험 게임들이 주간에 부활했으며, Jeopardy!, The Match Game, Let's Make a Deal, Hollywood Squares, Password, The Dating Game, The Newlywed Game 등이 인기를 끌었다.[1]1970년대, 게임 쇼는 새로운 게임과 기존 게임의 업그레이드로 부흥기를 맞이했다.[2] 1972년, The New Price Is Right가 데뷔하며 CBS가 게임 쇼 형식으로 복귀했음을 알렸다.[2] The Match Game 73은 Family Feud를 탄생시킬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The $10,000 Pyramid와 Jack Barry의 The Joker's Wild, Tic-Tac-Dough, Wheel of Fortune 등이 1970년대에 인기를 얻었다.[2] 프라임 타임 액세스 규칙으로 인해 신디케이션 프로그램에 대한 시간대가 열리면서, 많은 게임 쇼가 일주일에 5일 방송되기 시작했다.[2]
2. 3. 1980년대~1990년대: 쇠퇴와 새로운 시도
1980년대와 1990년대 초반, 게임 쇼는 텔레비전 방송에서 예전만큼 큰 인기를 얻지 못했다. ABC, NBC, CBS와 같은 주요 방송사들은 낮 시간대 게임 쇼 편성을 줄이거나 아예 없애버렸다. ABC는 1980년대 중반에 낮 시간대 게임 쇼를 중단했다가 1990년에 잠시 ''Match Game''을 부활시켰고, NBC도 1991년까지 게임 쇼를 편성했다가 1993년에 잠시 부활 후 1994년에 다시 중단했다. CBS는 1993년까지 ''The Price Is Right''를 제외한 대부분의 게임 쇼를 폐지했다.하지만 ''휠 오브 포춘''(《Wheel of Fortune》)과 ''제퍼디!''(《Jeopardy!》)는 신디케이션으로 이동하여 큰 성공을 거두었고, 황금 시간대 "접근 시간"의 주요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다. 특히, ''The Wheel of Fortune''과 ''The Price is Right''에서 모두 자동차를 획득한 참가자 마크 앤서니 디벨로는 현재까지도 가장 인기있는 게임쇼 참가자로 알려져 있다.[1]
케이블 텔레비전의 등장으로 ''Supermarket Sweep'', ''Debt''(Lifetime), ''Trivial Pursuit'' 및 ''Family Challenge''(Family Channel), ''Double Dare''(Nickelodeon)와 같은 새로운 게임 쇼들이 등장했다.[2] 또한, 이전에는 활용되지 않았던 게임 쇼 재방송 시장이 열리면서, CBN 케이블 네트워크(Freeform의 전신) 및 USA Network와 같은 채널들이 198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중반까지 게임 쇼 재방송을 편성하여 인기를 얻었다.[2] 1994년에는 틈새 시장을 겨냥한 Game Show Network가 설립되었다.[2]
영국에서는 게임 쇼가 미국보다 더 안정적인 인기를 유지했다.[3] 1980년대에는 게임 쇼가 독립 방송국의 규제를 많이 받았지만, 1990년대에 규제가 완화되면서 더 높은 상금이 걸린 게임이 가능해졌다.[3]
2. 4. 1990년대 후반~2000년대: 밀레니엄 시대의 변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게임 쇼의 인기는 최저점에 달했지만, 영국 게임 쇼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가 전 세계적으로 배포되며 게임 쇼의 새로운 전기를 마련했다.[1] 1999년, 미국에서 《Who Wants to Be a Millionaire?》가 큰 인기를 얻으며 황금 시간대 라인업의 정규 프로그램이 되었다.[1] 《Winning Lines》, 《The Chair》, 《Greed》, 《Paranoia》, 《Shafted》와 같은 고액 게임 쇼들이 시도되었으며, 이 시기를 "백만 달러 게임 쇼 열풍"이라고 부르기도 한다.[1] 《Survivor》와 《Big Brother》같은 리얼리티 텔레비전 경쟁 프로그램이 등장하며 게임 쇼의 경쟁 구도에 변화를 가져왔다.[1]2. 5. 2000년대 이후~현재: 다양화와 진화
휠 오브 포춘, Jeopardy!, Family Feud는 계속 재방송되며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Jeopardy!는 2001년에 문제 가치를 두 배로 늘리고 2003년에 상금 한도를 높이는 등 변화를 시도했다. 그 결과, 켄 제닝스가 쇼 최초의 수백만 달러 상금 수상자가 되었다. 이후 토너먼트 우승자 브래드 러터와 최근 챔피언 제임스 홀자우어, 매트 아모디오, 에이미 슈나이더 등 4명의 백만장자를 더 배출했다. Family Feud는 스티브 하비의 진행 아래 더 많은 저속한 유머를 포함하면서 인기를 회복했다.[1]2009년에는 여배우이자 코미디언인 킴 콜스가 황금 시간대 게임 쇼 《Pay It Off》의 최초 흑인 여성 진행자가 되었다.[2]
디지털 텔레비전의 부상으로 미국에서는 재방송 프로그램 시장이 확대되었다. 프리맨틀은 2015년 6월 고전 게임 쇼 전문 채널 Buzzr를 설립했다. 또한 일반 관객이 참여할 수 있는 과학에서 영감을 받은 《Geek Out Game Show》나 《Yuck Show》와 같은 축제 및 공공 장소에서 라이브 게임 쇼도 등장했다.[3]
2000년대 초반부터 《History IQ》, 《Grand Slam》, 《PokerFace》(북미 미방영), 《Duel》, 《The Million Second Quiz》, 《500 Questions》, 《The American Bible Challenge》, 《Mental Samurai》 등 토너먼트 형식의 게임 쇼가 등장했다. 대부분은 한 시즌만 지속되었다.[4]
2010년대 중반, 고전 게임 쇼의 황금 시간대 부활이 시작되었다. 2016년, ABC는 《Celebrity Family Feud》, 《To Tell the Truth》, 《The $100,000 Pyramid》, 《Match Game》을 부활시켰다. 2019년에는 《Press Your Luck》와 《Card Sharks》의 새로운 버전이 방영되었다. TBS는 2017년 10월 스눕 독이 진행하는 대마초를 주제로 한 《The Joker's Wild》를 부활시켰다. 이와 함께 《Awake》, 《Deal or No Deal》, 《Child Support》, 《Hollywood Game Night》, 《1 vs. 100》, 《Minute to Win It》, 《The Wall》과 같은 오리지널 게임 컨셉과 《Don't Forget the Lyrics!》, 《The Singing Bee》, 《Beat Shazam》과 같은 음악 테마 게임도 등장했다.[5]
2. 6. 지역별 게임 쇼
미국에서 게임 쇼의 인기는 전 세계적으로 유사하게 나타났다. 레그 그런디 기구는 미국의 게임 쇼에 대한 국제적 권리를 구매하여 다른 국가, 특히 그런디의 모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를 재현했다. 네덜란드 제작사인 엔데몰(나중에 미국의2. 6. 1. 미국
레그 그런디 기구는 미국의 게임 쇼에 대한 국제적 권리를 구매하여 다른 국가, 특히 그런디의 모국인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이를 재현했다. 네덜란드 제작사인 엔데몰(나중에 미국의2. 6. 2. 영국
영국에서는 게임 쇼가 텔레비전 라인업에서 더 안정적이고 영구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에 게임 쇼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면서 더 높은 상금의 게임이 가능해졌다. 패널 쇼는 영국에서 꾸준히 인기를 얻고 있으며, 《Have I Got News for You》, 《Would I Lie to You?》, 《Mock the Week》, 《QI》, 《8 Out of 10 Cats》 등 코미디 중심의 패널 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미국의 게임 쇼는 영국이나 호주와 비교하여 더 강력한 참가자를 고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세 국가 모두에서 게임 쇼 《The Chase》에 출연한 마크 라베트에 따르면, 미국에서 가장 성공적인 게임 쇼 참가자 중 많은 수가 게임을 지배할 것을 우려하여 영국이나 호주 게임 쇼에 출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한다.[2]2. 6. 3. 일본
일본의 게임 쇼는 버라이어티 형식, 신체적 스턴트, 운동 경기를 차용하여 독특한 형식을 띠고 있다. 이러한 일본 스타일은 해외에서도 차용되었으며, 《I Survived a Japanese Game Show》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패러디되기도 했다.[6] 일본 최초의 퀴즈 쇼는 NHK 라디오 제1방송의 『말의 샘』(1946년 12월 3일 ~ 1964년 3월 31일)이며, 이는 넓은 의미에서 게임 프로그램의 시초이기도 하다.2024년 9월 현재 신작을 방송 또는 배포 중인 프로그램은 ★, 구작을 방송 또는 배포 중인 프로그램은 △ 표시를 했다.
- NHK
- 니혼 TV
- TV 아사히
- TBS
- TV 도쿄
- 후지 TV
- 기타 방송사
일본에서는 컴퓨터 게임을 다루는 프로그램도 인기를 얻고 있으며, 게임 정보 프로그램과 게임 실황 프로그램으로 나뉜다.
- 게임 정보 프로그램
- 패미통(패미통) 계
- 게임 카탈로그 II(1994년 4월 7일 - 1998년 3월 25일, TV 아사히) →
- GameWave(1998년 4월 8일 - 2002년 9월 25일, TV 도쿄) →
- GAME BREAK(2002년 10월 2일 - 2003년 3월 26일, TV 도쿄)
- 닌텐도(닌텐도) 일사 제공 프로그램
- 슈퍼 마리오 클럽 (1990년 10월 4일 - 1993년 9월 30일, TV 도쿄) →
- 슈퍼 마리오 스타디움 (1993년 10월 7일 - 1996년 6월 27일, TV 도쿄) →
- 64 마리오 스타디움 (1996년 7월 4일 - 2000년 9월 28일, TV 도쿄) →
- 마리오 스쿨 (2000년 10월 5일 - 2001년 3월 29일, TV 도쿄) →
- Mr. 마릭 마법의 시간 (2001년 10월 4일 - 2002년 6월 27일, TV 도쿄)
- 알파 방송 제작 제작 프로그램
- 패미코 대작전 (1986년 5월 11일 - 1988년 3월 25일, TV 도쿄) →
- 패미코 대집합 (1988년 4월 4일 - 1991년 3월 25일, TV 도쿄) →
- The 게임 파워 (1991년 4월 2일 - 1994년 3월 29일, TV 도쿄) →
- 게임 왕국 (1994년 4월 5일 - 1999년 9월 30일, TV 도쿄) →
- 게임 EX (1999년 10월 7일 - 2003년 9월 27일, TV 도쿄) →
- GAME JOCKEY (2003년 10월 6일 - 2005년 6월 27일, TV 도쿄) →
- GAME JOCKEY2(2005년 7월 8일 - 2007년 6월 28일, BS 재팬)
- 포켓몬 정보 프로그램
- 포켓몬☆선데이 (2004년 10월 3일 - 2010년 9월 26일, TV 도쿄) →
- 포켓몬 스매시! (2010년 10월 3일 - 2013년 9월 29일, TV 도쿄) →
- 포켓몬 겟☆TV (2013년 10월 6일 - 2015년 9월 27일, TV 도쿄) →
- 포켓몬의 집 모여라? (2015년 10월 4일 - 2022년 3월 27일, TV 도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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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구성 요소
게임 쇼는 참가자, 진행자, 게임 규칙, 상금 및 상품 등의 요소로 구성된다. 참가자는 개인 또는 팀으로 참여하여 퀴즈를 풀거나 게임을 수행한다. 진행자는 게임 쇼를 이끌며 규칙을 설명하고 참가자들과 상호작용하여 재미를 더한다. 게임 규칙은 각 게임 쇼마다 다르며, 참가자들이 따라야 할 규칙과 승리 조건을 명시한다.
3. 1. 상금 및 상품
게임 쇼에서 제공되는 상금 및 상품은 해당 쇼의 인기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초기 게임 쇼에서는 낮은 상금이 제공되었지만, 점차 상금이 높아지면서 고액 상금을 내건 게임 쇼가 등장했다. 상금 외에도 BMW 이세타와 같은 자동차, 가전제품, 여행 상품권 등 다양한 상품이 제공된다. 상품은 간접 광고를 통해 제공받는 경우가 많으며, 일부는 게임 플레이의 일부로 사용되기도 한다. 고액 게임의 경우, 상품 배상 보험을 통해 상금 지급 위험을 관리한다.방송 신디케이션 게임이 도입되면서 더 가치 있는 상품과, 특정 쇼에서 장기간 출연이 가능해졌다. 1990년대에 미국, 영국, 그리고 이후 전 세계에서 고액 게임 쇼가 증가하는 데 규제 완화가 큰 영향을 미쳤다.
3. 2. 보너스 라운드
보너스 라운드(보너스 게임 또는 최종 게임이라고도 함)는 일반적으로 메인 게임 이후에 진행되며, 해당 게임의 우승자에게 더 큰 상금을 획득할 기회를 제공한다.[2] 보너스 라운드에서는 판돈이 더 높고, 메인 게임보다 더 어렵게 구성되는 경우가 많다.[2]보너스 라운드의 게임 플레이 방식은 메인 게임과 다른 경우가 많지만, 전체 쇼의 통일성을 위해 메인 게임의 요소를 차용하기도 한다. 일부 게임 쇼에서는 최종 라운드를 "보너스 라운드"라고 칭하지 않지만, 실질적으로는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보너스 라운드 형식에는 정해진 공식이 없지만, 여러 쇼에서 반복되는 요소들이 존재한다. 보너스 라운드는 주로 해당 쇼의 최고 상품을 걸고 진행되며, 대부분 단독으로 진행된다. 예외적으로 ''Jeopardy!''와 ''The Price Is Right''에서는 마지막 라운드에 여러 참가자가 참여한다. ''Jeopardy!''에서는 긍정적인 점수를 가진 모든 참가자가 최종 라운드에 참여하여 베팅을 하고, 다음 날 다시 출연할 기회를 얻는다. ''The Price Is Right''는 녹아웃 토너먼트 방식을 사용하여, 6명의 참가자 중 "Showcase Showdown"을 통해 2명이 최종 Showcase 라운드에 진출하여 최종 우승자를 가린다.
1960년대까지 대부분의 게임 쇼에는 보너스 라운드가 없었다. 전통적인 2인 대결 방식에서는 승자가 챔피언이 되어 다음 쇼에서 새로운 도전자와 대결했다.[2]
초창기 보너스 라운드 중 하나는 ''Beat the Clock''의 잭팟 라운드였다. 참가자 부부 중 아내가 잭팟 보드에서 스턴트 공연을 펼쳤고, 유명한 인용구나 문구를 재조합하여 보너스를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실패 시에는 200USD 이상의 위로 상품을 받았다.
또 다른 초기 보너스 라운드는 ''You Bet Your Life''에서 매주 최고 금액을 획득한 팀이 마지막 질문에 답하여 잭팟(처음에는 1000USD에서 시작하여 매주 500USD씩 증가)을 획득하는 방식이었다.
1961년부터 시작된 ''Password''의 Lightning Round에서는 메인 게임 우승자가 60초 안에 빠른 속도로 비밀번호를 맞혀 최대 250USD의 보너스 상금을 획득했다.[2][3]
보너스 라운드는 게임 쇼 프로듀서 Mark Goodson이 ''Password''를 처음 발표했을 때, 단순히 비밀번호를 추측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되었다. Howard Felsher는 "더 많은 것이 필요했고, 그것이 Lightning Round가 초대된 방식입니다. 그 시점부터 모든 게임 쇼는 최종 라운드를 가져야 했습니다."라고 말했다.[4]
''Match Game''의 "Super-Match" 보너스 라운드 중 "Audience Match"는 참가자가 스튜디오 청중의 응답을 추측하는 방식이었다. 1975년, 이 방식은 Richard Dawson을 초대 호스트로 한 ''Family Feud''라는 독립된 게임 쇼로 발전했다.[5]
4. 비판 및 논란
게임 쇼는 오락성과 흥미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비판과 논란에 직면하기도 한다.
참조
[1]
웹사이트
James Holzhauer Explains the Strategy Behind His Jeopardy Winning Streak
https://www.theatlan[...]
2019-04-24
[2]
서적
Come on Down!!! The TV Game Show Book
Abbeville Press Publishers
1988
[3]
서적
The Encyclopedia of TV Game Shows: 3rd Edition
Checkmark Books, Facts on File Inc.
1999
[4]
서적
[5]
서적
[6]
방송
TBSチャンネルにて放送中
[7]
서비스
Amazon Prime Videoで配信中
[8]
서비스
Paraviで配信中
[9]
서비스
2023年4月に復活し、Amazon Prime Videoで新作配信予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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